'보꼰치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2.08 베르가마스크(베르가모 사람) Bergamasc (1) 2

오늘 월요일, 이탈리아 전체가 공휴일이다. 이탈리아 공영 RAI UNO에서 바티칸의 미사 장면을 생으로 때리는걸로 봐선 중요한 종교기일인거 같은데 지금 그거 확인해볼 시간이 없다. 왜냐면 어서 짐을 싸서 엘리자베따네 집에 맡기러 가야 하기 때문. 사실 오늘까지 숙소비를 치뤘고 그래서 오늘 숙소를 나와야 하지만 주인 데이빗이 오늘까지가 그의 여자친구와 연휴를 즐기고 내일 오기때문에 우리는 오늘 안나가고 하루 더 묵을 생각이다. 일종의 도둑 숙박. 내일 아침 7시 엘리자베따(ELISABETTA)와 함께 그녀의 차를 얻어타고 피렌체로 이동할 계획이니 설마 그 꼭두새벽에 데이빗이 청소도구를 들고 나타나진 않겠지.

오늘은 지난 토요일, 밀라노를 조금 못가서 만나는 도시 베르가모(BERGAMO)에서 가졌던 저녁식사 초대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게 꽤 사연이 많은 이야기인지라 지금 안남기면 곧 피렌체, 페루자로 이어지는 여행일정 이야기에 밀려 할 기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 짐도 싸야하는 강박을 안고 서둘러 적어보자.


Bergamo시내의 모습. 어딜가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누가 어디서건 집에서 밥 먹여준다면 왠만하면 다 제쳐놓고 챙겨먹자는 우리. 엘리자베따네가 한동안 베르가모에 살때 알게된 친구로부터 모처럼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고 그 틈에 우리도 초대를 받았으니 토요일 오후 5시, 엔리코가 모는 차를 타고 베로나를 출발했다. 5시가 조금 못미친 시간이었지만 라이트를 켜야할 만큼 이미 어둑어둑했다.

1시간을 조금 넘게 달린 길,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중 최근 뉴스에 너무 자주 등장하시는 베를루스코니의 근황이 궁금해 물었는데 요지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SKY라는 위성채널이 이탈리아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근데 이게 부가세를 10%를 내는 반면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MEDIASET(채널이 RAI와 마찬가지로 3개)은 20%를 내고 있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베씨, 고민끝에 SKY의 세금을 올리도록 지시해 이와 관련한 논란이 불붙어 뉴스에 자주 등장한거라고. 부자증세, 서민감세 따위의 논란으로 등장한게 아니라 자신의 주요 밥벌이 문제때문에 등장한 얘긴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이분, 한국에도 한 사람 있다.

베르가모 구시가지의 어느 건물 앞. 쌀쌀한 날씨와 인적없는 거리에 아랑곳 않고 어떤 남자가 열심히 기타를 뜯고 있다. 주변의 잔잔한 소음도 모두 저 기타소리에 묻혔고 적막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저 자리에 더 머물고 싶었으나 일행이 반대편으로 앞서 가는 바람에 서둘러 사진만 한 장.

아무튼 베르가모에 6시가 좀 넘어 도착했고 우리를 초대한 줄리오(GIULIO)의 집에 가기에 앞서 먼저 베르가모의 구시가지를 살짝 돌아봤다. 걸어서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만큼 작은 곳, 세월에 찌든 낡은 건물이 길게 이어졌고 밤에 건물을 올려다 보는 모습은 약간은 기괴스럽지만 좁은 길목에 늘어선 작은 상점에서 새나오는 불빛과 그 안의 모습들, 가령 케익을 팔거나 연말용 선물을 팔거나 하는 모습을 보니 춥고 삭막한 거리가 훈훈해진다. 


음식을 파는 집은 저렇게 유리에 김이 잔뜩 끼었다. 나이든 주인아저씨가 큼직한 치킨을 집어들고 있고 그 뒤로 젊은여자가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치킨맛은 그래도 한국이..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아페리띠보 한 잔을 위해 작은 BAR에 들렀다. 예닐곱 명의 동네 사람들이 축구와 신문을 보며 한가한 저녁을 맞고 있었는데 이집, 와인 한 잔에 2유로라는 아주 착한 가격과 무엇보다 보꼰치니(Boconcini-한입 군것질꺼리)를 다양하고 넉넉하게 갖추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식사가 될 아주 훌륭한 곳이었다. 그래선지 어떤 아줌마, 프로슈또와 치즈를 열심히 가져다 먹었는데 이를 어느새 눈여겨 본 엔리코(ENRICO)도 BAR를 나와 한 마디 하는 말이 "치즈를 아주 삽으로 푸더군".

저 치즈를 강판에 갈면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먹는 파르마산 치즈가루가 되지만 이탈리아에서 저 치즈를 파르마산 치즈라 부르진 않는다. 파르마산 치즈는 오로지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파르마와 레지오에서 생산되는 치즈만을 그렇게 부른다. 물론 가격도 더 비싸다. 허나 우리에겐 저 치즈도 꽤나 맛있었다. 잘 숙성된 파르마산 치즈와 달리 저것은 쫀득한 치감이 있어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좋을 듯 싶었다. 한 통 안고가고 싶게 만든 치즈.


과자, 견과류, 쏘시지 튀긴거, 감자칩, 할라피뇨같은 고추피클, 빵, 프로슈또, 치즈.. 서서 먹는 사람들은 음식을 곁에 두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와인 한 잔이지만 몸이 살짝 데펴진게 좋다. 다시 차를 타고 높은 곳에 위치한 구시가지를 내려와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를 세우고 무슨 생각이 발동했는지 아페리띠보를 한 잔 더하자며 인근의 또다른 BAR로 우리를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나라라면 복권이나 팔아야 할 작은 BAR다. 바텐과 손님의 공간이 정확히 50대 50을 차지한 구조. 허나 그 안에선 이미 왁자한 잔치가 벌어졌다. 엔리코가 들어서니 한층 소음이 커졌는데 주인은 물론 손님 몇몇 과도 잘 아는 사이인지 요란하게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아무튼 우리는 눈이 둥그레져 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물론 엘리자베따도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BAR가 좁아 길을 통과할 수 없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여기서도 와인 한 잔씩을 더 마시고 주인이 특별히 만들어준 보꼰치노, 샐러리에 고르곤졸라 치즈를 얹은 안주를 맛있게 먹어치웠다. 앞서에 이어 두 번째이니 이러다 저녁을 과연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엔리코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바텐더. 이 BAR는 술도 팔지만 복권도 판다. 한마디로 동네 사랑방이다.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탈리아의 BAR 문화는 정말이지 우리나라에도 수입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일부는 앉아서, 일부는 서서 비교적 저렴하다 할 커피나 아페리띠보, 또는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짧게는 5분, 길게는 그보다 훨씬 더 이상으로 시간을 보내곤 하지만 운영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된다. 우리로 치면 '딱 한 잔만 더' 개념이 바로 이곳인 셈인데 이탈리아는 그게 잘 정착된 편이다(아마 유럽 대부분이 이렇지 싶다). 양보다는 맛과 멋을 즐기는 곳, 그러나 양으로 즐기더라도 주인입장에선 기분나쁜 일이 아닌 곳. 다만 때론 서서 술을 마시는 손님이 손해라면 손해인 곳. 우리 정서와는 멀지만 BAR 문화는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문화다.

우리의 와인잔을 채우고 있는 바텐더. 뒤로는 다양한 술들이 즐비하고 앞에는 그것들과 협연을 펼칠 보꼰치노들이 가지런하다. 가게 안은 우리를 포함 10명이 좀 넘는 손님들로 거의 발디딜 틈이 없는 상황.

큰일났다. 두서없이 마구 적어 내려가다보니 시간은 흘렀건만 아직 본론은 시작도 안했다. 줄리오의 집에서 즐긴 만찬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적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2부로 남겨야겠다. 사실 엘리자베따가 우리의 블로그를 거의 매일같이 모니터한다. 지난 번 그녀의 부모님 집에 다녀온 이야기도 2부에 걸쳐 연재했는데 생소한 경험이었던 만큼 어쨌든 남기긴 하지만 안올리면 엘리가 무척 섭섭하게 생각하겠다는 은근한 압박감도 있는게 사실이다. 이번 포스트 역시 그와 좀 비슷하다. 그래도 즐거운 작업이다. 2부는 이따가 밤에마저 작성해야겠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