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15 오랫만에 4
  2. 2008.12.24 아침풍경 A morning with much fog 2
  3. 2008.06.03 작지만 즐거운 생활의 변화 8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는 USB모뎀이다. 손가락만한 이놈을 가게에서 구입해 금액을 충전하고 컴에 꽂아 그만큼 사용하면 되는 것. 단기사용자 입장에서 쓰기 좋고 무선이다보니 이곳저곳 다니며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근데 이게 아주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는데 가령 10유로치를 충전해 사용할 경우 금액에 상관없이 한 달 안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 금액이 남아도 한달 후면 사용이 끝나고 한달 안에 금액을 모두 사용하면 당연히 사용이 끝난다. 근데 더욱 황당한건 만약 보름만에 사용을 다 해서 다시 충전을 해도 남은 보름을 기다려 한달을 지나야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모르고 그냥 25유로라는 거금을 충전했는데 아직 한 달이 안채워져 사용을 못하고 있는 중이다. 정액에다가 정기가 이상하게 결합된 사용제도. 이 현실에 좌절하며 지금 유일하게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해주는 동네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다. 기간이 갱신되는 한 달이 바로 내일인 15일이다. 근데 앞서 충전한 25유로가 모뎀 칩에 고스란히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며 도대체 무슨말인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낸다면 그 심정의 딱 10배의 심정이 현재 우리 심정이라는 점만 알아주기 바란다. 만약 이탈리아가 전시상황이라면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미국제 무기를 빼앗아 먼저 이스라엘에 한 방 쏴주고 이탈리아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도 한 방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의 간단한 근황. 지난 주 가까운 아씨지를 다녀왔다. 날씨도 좋았고 동네도 근사했다. 성당 몇 개 둘러보면 되겠지 하고 얕잡아 봤는데 오후 1시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해 이제 한 곳 봤다 싶었는데 어느새 4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기차시간을 알아보니 5시 기차를 타지 않으면 7시 기차를 타야하는 상황. 아씨지를 넉넉히 둘러보려면 하루는 꼬박 필요하겠더라. 붉은 빛을 받는 고성과 성당도 멋졌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근사했고 기념품 판매에 혈안(?)이 된 수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옆집, 그러니까 우리집과 같은 층에 있는 작은 방에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다는 이탈리아 '애송이'가 하나 입주했다. 이름은 네스뜨로. 키는 김군보다 조금 작고 얼굴은 서글서글하니 착하게 생겼는데 역시 주변으로부터 착하다는 칭송을 받는 우리와 발코니를 놓고 뜻하지 않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듯이 멋진 풍광을 제공하는 이 발코니가 알고보니 우리집과 바로 네스뜨로의 집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었던 것. 근데 심각한 문제는 네스뜨로의 침실이 발코니에 나서는 순간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집주인(우리집 주인이기도 하다)이 우리가 발코니로 나서는 입구쪽에 창살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빨랫줄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다지만 발코니 끝에 서서 감상했던 풍광을 이제는 반쪽밖에는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한 마디로 꼭지가 돌아버린 상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이어 우리에겐 두 번째로 경악스러운 사건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생각에 친선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여차저차 이야기가 오간끝에 창살을 좀 더 후퇴시킨다는 것으로 잠정 합의를 봤다. 그래도 발코니 끝에서 풍광을 즐길 수는 없는 상황.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후일을 도모키로 했다. 봄에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이 집으로 복귀하게 된다면 그때는 네스뜨로를 좋은 말로 구워 삶아서 저 창살을 없앨 생각이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적을 이길 수 없다면 적은 내편으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요며칠 날씨가 포근하다. 조만간 토스카나의 한 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 취재때문인데 만약 그곳에서 만난 어떤 인물이 충분히 얘기꺼리가 되고 그가 협조적이라면 그 마을에서 적어도 1주일 가량 머물며 카메라를 돌릴 생각이다. 그리고 볼로냐의 한 유서깊은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정열넘치는 한국청년이 있다고 하는데 그 친구도 한 번 만나러 볼로냐를 방문할 계획이다. 김군은 이탈리아 모든 곳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볼로냐가 마음에 와닿는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큰 도시. 특히 찌를듯이 솟은 타워를 보는 순간 허를 찔리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데 시에나의 타워도 멋지지만 볼로냐만큼은 아니다. 볼로냐만의 고집스런 긍지 하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뻬루자에 공부하러 온 외대 학생들을 집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먹었다' 보다는 '먹였다'가 더 적합한 표현일 듯 싶은데 이탈리아 온 지 1주일 밖에 안된 탓에 그간 적응도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가엽고 애처롭던지.. 마침 강양의 생일날이기도 해서 파스타와 리조또로 허기와 외로움을 단박에 날려주었다. 강양 몫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여럿이 만끽했다는 것으로 마음만은 푸짐해졌다. 오늘 지난 번에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돼지고기 토마토 조림 스테이크를 시도했는데 조금만 더 보완하면 메뉴로 올려도 손색이 없겠다는 평가를 강양과 며칠 째 우리집에서 머물고 있는 몰타 플랫메이트 지희로부터 받아냈다.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지금 하는 요리들은 사실 호기심의 수준일 뿐 당장 식당을 염두해두고 하는 요리는 아니다. 진짜는 좀 더 후다. ㅋㅋ 그나저나 이제 불혹이라니..




Posted by dalgonaa

 아침 7시에 눈을 뜨니 창밖이 붉그스레 밝아온다. 점퍼를 챙겨입고 카메라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기막힌 풍경. 어제의 안개는 어느새 낮은 곳으로 차분히 물러앉았고 그 위로 깨끗한 겨울공기가 쨍하다. 곧 아펜니노 산맥을 뚫고 태양이 솟을텐데 그 전에 서둘러 이 풍경을 담기로 했다. 세장의 사진을 파노라마로 이어봤는데 형편없는 실력을 보지말고 스케일과 분위기를 보시길..^^

 
오늘이나 내일, 성탄절 미사가 열리는 성당이나 기웃거려봐야겠다.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의 합창은 우리에겐 멋진 '공연'일 터. 집엔 맥주와 와인도 차곡차곡 재워뒀으니 파스타 삶고 돼지고기 구으며 지직 거리는 텔레비전 보면 멋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될테다. 맛있는 저녁들 드시라!

Posted by dalgonaa

12시 30분,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 수퍼마켓이다. 딱히 사야할 것이 정해지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들르곤 하는데 그럴 경우 꼭 사게 되는 것을 물이다. 가끔 녹물이 나오기도 하는 이곳 수돗물 사정에서 생수는 쇼핑에서 필수적인 품목이다. (몰타는 바닷물을 담수화해 수돗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 탓에 물값이 비싸다고..)
 
최대 5리터 용량의 물도 수퍼에서 판매하고 있고 우리는 주로 3리터 용량의 물을 사다 먹곤 하는데 문제는 이놈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라는 것. 더욱이 우리가 사는 집은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 운동량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쇼핑에서 물 무게만 빠져도 좀 살 것 같은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마침 이웃에 사는 한국인 학생이 전하길 "스콧 수퍼에서 6개들이 물 6팩을 사면 집까지 배달"해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도 지금 집 한 켠에 물을 쌓아놨다는 것.

얼씨구나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어제,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콧에 들러 배달 여부를 물으니 "일단 쇼핑부터 하라"고 계산원이 상냥히 이야기한다. (몇 개의 대형 수퍼마켓 가운데 강양과 김군은 '스콧'이 가장 친절한 수퍼라는데 흔쾌히 동의한다)

감자와 우유, 맥주 등 몇 가지를 쇼핑한 뒤 계산대로 돌아와 와 직원에게 이것들에 더해 물 6팩을 추가로 해서 배달해달라고 하자 쇼핑카트로 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음.. 김군이 카트를 밀고 가 물을 실었다. 근데 싣다보니 최대 7팩이 실리길래 그냥 그 만큼을 계산대로 끌고 왔다. 무거운 물을 카트에서 내릴 순 없는 노릇, 계산원은 힐끗 물을 살피더니 애초 우리가 밝힌 의향대로 6팩으로 계산을 마치고 말았다.

때마침 김군도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어서 그 순간의 오류를 짚어주지 못했다. 결국 모든 계산을 마치고 4시에서 5시 사이에 배달이 갈 꺼라고 말하는 계산원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헤어진 뒤 집에 돌아오면서 강양이 뒤늦게 살핀 영수증에서 물 1팩이 덜 계산됐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찌할 것인가?.." 어쩌긴? 그냥 하나 더 실려 오면 고맙게 마시면 되는거지. 4시 20분, 초인종이 울리고 스콧 배달차에서 물을 내리는 직원을 보고 바로 뛰어 내려갔다. 물은 우리 예상대로 7팩이 도착해 있었다. 직원과 즐겁게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서둘러 집으로 물을 옮겼다.

그게 바로 아래 사진에 있는 놈들이다. 이것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찌나 뿌듯한지.. 



>> 하나 삐쭉 솟아 있는 문제의 San Michel.

그리고 하나 더. 옥상에는 파라솔 의자가 2개 있다. 사하라에서 불어온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쓸쓸히 방치되어 있던 녀석 가운데 가장 쓸만한 놈 하나를 강양이 쓰겠다며 지난 주 일요일 끌고 내려왔다. 물걸레로 정성들여 닦아내니 본래의 하얀 살을 드러낸다.

이놈을 거실쪽 발코니에 가져다 놨다. 자주 안나가게 되던 발코니였는데 녀석이 그 자리에 있으니 발코니를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강양은 거기에 앉아 멀리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며 영어책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마침 그 자리는 북향이어서 한낮에는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지는데 옷소매를 지나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바람은 여간 상쾌한게 아니다.

이러다 문득 한국의 소식을 떠올려 볼 때면 괜히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흐흐흐.. 촛불을 같이 못들어 주는 건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작은나마 후원도 하면서 마음의 짐은 덜고 있다.

압력솥처럼, 곧 터져버릴 듯한 머리를 시원하게 식히고 싶은 이들이여, 승전의 소식을 안고 오는 그대들을 위해 시칠리아를 고스란히 담아낸 와인과 몰타의 싱싱한 무화과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겠소. 이곳의 푸른 바다와 뜨거운 햇살, 그리고 시원한 바람은 모두 그대들의 것이리니..



>> 점심을 먹고 나면 잠시 진이 빠지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오는 낮잠의 유혹은 실로 엄청나다. 꿀맛같은 낮잠을 피하거나 견뎌야 할 이유가 여기선 없으니 BBC라디오 드라마를 켜놓은 채 양껏 챙겨먹는다. 낮잠은 역시 소파가 최고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