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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1 신화가 키워낸 맛? 무화과
한국에 있을 당시, 무화과라면 그동안 말린 것만 먹어왔다. 대략 십 몇년 전, 룸살롱에서 일했던 어떤 아는 형이 '안주꺼리'라며 가져다 준 것이 무화과였고 그때 무화과를 처음 맛봤다. 쫄깃한 식감도 좋았고 몸에 좋은 설탕을 쪼려 엉긴듯한 과육도 달콤하니 별스러웠고 씹을 때 마다 톡톡 터지는 씨알은 먹는 재미마저 안겨줬다. 세상에 이런 먹거리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어느덧 그때를 떠올리며 그것의 원조라 할 말리지 않은 무화과를 이곳에서 싫컷 맛보고 있다.

이곳에서 맛보는 무화과는 자두만한 크기로 갓 따내 촉촉하다. 껍질은 연두색을 시작으로 익어가면서 검은 자줏빛을 띄는데 정열적인 색감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여타 과일에 비해 썩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그냥 씻어서 껍질째 먹는다. 잘 익은 놈은 특유의 단내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면 말랑말랑한 촉감이 식욕을 돋궈준다. 오래 둬서 너무 익어버린 것은 당도도 훨신 높고 껍질도 연해지며 이리저리 구르다 터져 결국 끈쩍한 과즙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 맛은?..  아~주 좋다.



>> 볼품없는 모습, 그러나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생각날 때 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된다. 말캉하게 씹히는 첫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하고 곧 혀를 열심히 움직여 바사거리며 터지는 씨알을 찾아내 톡톡 씹는 재미도 은근하다. 키위의 씨알보다 조금 더 바삭한 느낌.

영어 이름은 Fig라고.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으로부터 '몰타 역시 지중해에 속한 바, 무화가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간 학원을 오가며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남의 집 담너머의 그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제 이곳에는 무화과 나무가 많다. 심지어 지난 번 자물통 고장으로 집에도 못들어가고 길거리를 헤맬 때 담을 넘어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길에서 직접 따먹기도 했다. (주인이 목격했다면 성을 냈을까? 알 수 없다)

익어서 떨어진 무화과는 때론 사람들의 발에 밟혀 개똥과 더불어 길바닥을 시커멓게 더럽히는 주범의 하나기도 하다. 지난 번 골든베이에 놀러갔을 때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것 역시 무화과였다. 아마 지금부터 가을사이에 골든베이의 언덕에 간다면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두려운 눈치 살피지 않으면서 맘껏 따먹을 수 있을테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테니 그 기회의 확률도 줄어들겠지만..



>> Golden bay 언덕의 무화과 군락. 이미 동작빠른 누군가 다 걷어가지 않았을까.. 흑..

무화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자 역시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에 얽힌 얘기들이 속속 튀어나온다. 그리스에서 신들이 뛰어놀았다던 시절,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무화과를 가까이 하고 즐긴 덕에 특유의 정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고 반면 기독교에선 사과와 더불어 원죄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무화과 역시 사과와 더불어 선악과(善惡果)의 하나였던 모양인데, 아무튼 이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요즘엔 '하와'라고 부르는데 어찌 부르건)가 그 순간 육체의 부끄러움에 눈뜨면서 서둘러 사타구니를 가리게 되고 이때 사용된 잎이 무화과 잎이다. '어렸을 적 바라보던 그림의 그 '부분'을 안타깝게 가리고 있던 몹쓸 이파리가 그것이었었군..' 이런저런 질곡을 거쳐 무화과는 다산의 상징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룸살롱과 무화과의 만남이 어쩐지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런 이야기도 있단다. 1935년,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 또한 '무화과'라고.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자 사내는 절망에 젖어 지내게 되고 뒤늦게 여인이 돌아왔으나 사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무화과같은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오늘날 보자면 참으로 유치한 제목과 설정이지만 당시로선 꽤나 세련된 은유였을 터. 실제 먹거리로서가 아닌 관념으로서 소비하는 무화과는 그 자체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을테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 영화 '무화과' 사진.

이밖에도 무화과에 얽힌 숱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 비슷비슷한 동네의 이야기들이다. 가령 클레오 파트라가 좋아했던 과일이 무화라거나.. 그녀가 어디 무화과만 좋아했겠는가만은.. 앞으로 지중해 언저리를 돌아다니다 주어듣게 될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그때 더 소개키로 하고.

근데 무화과가 꽃 없이 맺히는 열매라는 사실을 모르는건 아닐 터. 기실 무화과는 그 자체가 열매가 아닌 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뭐가 옳건 그건 종(種)학자들이나 관심가질 얘기고 우리는 맛있는 무화과만 즐기면 되겠다. 국내에서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무화과를 재배하나보다. 근데 가격이 만만찮다. 인터넷 가격을 보니 4kg이 45,000원. 1kg에 11,000원인 셈인데 이곳에선 같은 무게를 3,500원 정도에 사먹는다. 1/3가격에 먹는 셈.



>> 말랑말랑한 과육이 보는 것 만으로도 식욕을 돋군다. 비주얼을 떠나서 무화과는 실제로 디저트보다는 애피타이저(혹은 Starter)로 애용된다고. 많이 드시라. 그 말 밖에는..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