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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3 김밥은 된다 3

지난 주말은 월요일이 마침 몰타의 승전기념일이어서(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였다. 금요일 와인파티를 즐긴 뒤 마침 그곳에서 만난 카리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드가강을 일요일에 집으로 초대했는데 단 두 사람만 부르기엔 단촐할 듯 싶어 이참에 김군의 반 친구들도 초대를 했다. 저녁 7시부터 마시고 놀기 시작한 자리는 와인 9병과 맥주 3캔을 비운 뒤 새벽 3시가 가까이 되서야 끝이 났다.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일본.. 국적도 다양하다. (왼편의 남녀가 카리나와 드가강. 이들의 나이차는 18세. 드가강은 유고가 고향이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완전히 이민을 와버렸다. 지금은 독일에서 페인트 마이스터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고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아무튼 김군의 반 친구들 중 연락이 닿지않아 오지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후에 파티 얘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의 기색이 엿보여 그게 걸렸었는데 공교롭게도 딱 그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걸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온 미즈키는 지난 파티에 등장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것을 두고 크게 안타까워 했으니 그녀(그래봐야 20살 갓 넘긴 학생이다)를 위해서,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해 작은 작별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김밥.







목요일 밤에 미리 밥을 짓고 속에 들어갈 계란과 채소도 미리 부치고 볶아뒀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김만 말면 그만이다. 마침 K-mart에 단무지가 들어와 진작에 5개를 사다놓은 것이 있어 그것이 김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시금치를 대신하는 오이가 녹색을 표현하는데 다소 한계가 있는 듯 해서 지난 파티때 먹고 남은 냉동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볶아 이놈을 더했다.

특히 밥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수퍼에 대부분인 안남미(인디카)는 물론 일찌감치 제외했고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자포니카를 골랐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자포니카의 대부분은 이태리에서 생산되는데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쉽게 물르고 밥알이 거의 3배 가까이는 불어나는지라 리조또용으로는 적합하겠지만 김밥용으로는 아니다. 그나마 최근 유럽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스시열풍에 힘입어 '스시용'이라고 나온 쌀이 있어 그놈을 골라 밥을 지었는데 밥알이 우리것 보다 더 둥글다. 그런대로 찰진 구석있고 밥을 짓고 난 후에도 쌀의 기본 형태를 제법 유지하니 다행이다 싶다. 이곳 쌀에 대해서 포스팅 한 번 할 생각이니 그때 더 자세히..  지은 밥은 잠시 식혀둔 뒤 플라스틱 볼에 옮겨담아 미리 만들어놓은 초물을 살살 끼얹어가며 밥을 비볐다. 대단한 정성이다.








수업을 마치고 한 자리에 둘러 선 친구들. 가운데 김밥을 들고 있는 친구가 Mizuki다. 그 옆에 Kayoko와 바로 뒤에 이태리에서 온 Giouseppe, 그리고 맨 오른쪽 끝의 Natalie가 모두 이번 주말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만 Mizuki는 독일을 일주일간 여행한 뒤 아시아나를 타고 서울에서 하루 스톱오버해 다음 날 동경으로 돌아간다는데 서울 어디서 묶을꺼냐고 물으니 명동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옛 안기부를 말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물건 몇 가지를 미즈키에게 들려보내 그곳에서 하루 숙식을 제공받으라 할 껄 그랬나? ㅋㅋ

김밥을 처음 본 이들의 반응은 그 형형색색의 색감에 먼저 탄성을 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이 대목에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낯선 음식을 처음 접할 때면 누구든지 보이는 것을 통해 먼저 그 맛을 짐작하기 때문인데 시각에서부터 경계심이 생겨버리면 왠만큼 놀랄만한 맛이 아니고선 잘못지어진 첫 인상을 만회하기란 좀 처럼 쉽지 않다. 김밥이 갖는 비주얼은 그런 면에서 낯설음에 경계심을 잔뜩 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친숙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아는 음식이다.

역시 김밥맛을 대번에 알아보는 이들은 미즈키와 가요코다. 몇 번 오물오물 거리더니 이내 눈가에 웃음이 번지고 곧이어 수줍은 듯 '오이시이~'가 튀어나온다. 비슷한 식문화를 가졌으니 그 입맛이 어디 가겠나? 일전에 파티에서 김밥맛을 이미 본 다른 친구들도 덥석덥석 집어 먹기에 바쁘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있는 Sarah는 선생이다. 그녀 역시 'Oh~ sweet''을 연발하며 제법 용기있게 김밥에 도전한다.

김밥은 확실히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식이다. 몇 가지 상상력을 얹어 모양과 맛에서 색다른 도전에 나선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을테다. 김밥의 물건너 사촌쯤 되는 캘리포니아 롤이 'Gochi'라는 간판을 내걸고 좁은 공간에서 일본인 젊은 사장의 운영 아래 힛트를 치고 있는 이곳의 모습을 학원을 오가는 길에 매일 같이 목격하노라면 그 짐작은 더욱 굳어진다.






이날의 김밥, 과연 그 맛을 새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이들은 몇이나 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심없이 나눠주는 것에서부터 만남은 각별해지기 시작한다. 김밥 맛에 대한 그리움까진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이날이 좀 더 각별한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