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노량진이 있다면 몰타에는 마셜슬록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생선의 종류와 시장의 규모다. 북적대는 인파와 상인들의 성난 듯한 외침, 수족관을 뛰쳐나오려는 온갖 생선들의 힘찬 몸부림과 이를 단칼에 다스리는 은빛 회칼의 서슬, 흥건히 젖은 바닥 위로 흥정도 오가고 돈도 오가고 굵은 소금 듬뿍 뿌려진 생선도 오간다. 어디가? 노량진 수산시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몰타의 마셜슬록은 어떤 모습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리고 저녁 밥상에 올릴 고등어 따위의 생선을 구입하기 위해 지난 일요일 오전, 마셜슬록으로 향했다. 털털거리는 노란색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기 직전 한 장. 승객들이 계속해서 올라타고 있고 버스가 출발한 후 펼쳐지는 들판. 공항에서 올 때 신기하게 바라봤던 자동차가 또 보이길래 한 장.
버스가 좌우로 돌 때마다 창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막아가며 30분을 달리니 버스는 어느덧 마셜슬록에 도착했다. 버스 안 누구보다도 비린 맛에 굶주려 있는 김군은 콧 평수를 늘려 깊은 숨을 들이켰다.
‘살집 단단히 오른 싱싱한 고등어 두 마리만 걸려라. 당장 네놈을 사다가 기름 두른 팬에 지글지글 구워먹으리..’
잊혀진 맛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마셜슬록 수산시장의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차양만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좌판들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그 아래에는 생선이 아닌 온갖 신발과 옷가지, 생필품과 동물사료, 심지어 화장실 변기 뚫어주는 고무 끼운 막대까지 없는 게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거친 고함으로 손님을 붙잡는 생선장수는? 펄떡 거리는 활어와 탱글한 고등어는? 바다내음 농축된 비린내는? 아니, 이곳이 수산시장이긴 한건가? 허겁지겁 10분을 헤매자 우리는 그 긴 좌판 사이에 겨우 예닐곱 개 옹기종기 모여있는 생선좌판을 발견했다. 유난히 붉고 두터운 차양 아래에 싱싱함이라곤 결코 찾아보기 힘든 오징어와 주꾸미, 냉동 연어와 냉동 대구 살, 그리고 몇 가지 생선들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그 옆으론 커튼과 화분 좌판이 이어지는, 지중해의 풍요로운 물결을 품은 마셜슬록 '수산시장'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먀셜슬록 '시장'의 거리. 신발 따위의 생필품이 대부분이다. 겨우 발견한 생선좌판. 뱀장어를 닮은 생선은 내가 먹기 보다는 녀석이 나를 먹을 것 처럼 좀 무섭고 징그럽다. 냉동에서 풀린 오징어. 오른쪽 생선이 구입해온 A 뭐시기
여름용 샌들과 동유럽에서 건너온 조악한 기념품 따위에 실망하며 발길을 돌리기엔 반나절을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구경 꺼리는 없는 거고 마지막 희망, 고등어라도 있으면 건져가자는 생각에 몇 안되는 생선 좌판을 기웃거렸지만 고등어도 없었다. 좀 전 까지 꽁꽁 얼어있다가 지금은 더위에 축 늘어진 오징어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
몇 안 되는 생선들을 둘러보다가 제법 만만하게 요리해먹을 만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야말로 생선답게 생긴 녀석의 이름은 A. (A다음의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5.8유로, 한국 돈으로 9천원에 이르는 가격은 마리 단위가 아닌 1kg 단위였다. 뚱뚱한 상인 아줌마는 넉살 좋게 웃어 보이며 두 마리를 집어 저울에 쟀고 1Kg가 넘는 무게가 나오자 가격은 6.5유로로 매겨졌다. 신통치 않은 영어로 흥정을 할 순 없는 노릇. ‘손질해줄까?’라는 제스츄어에 ‘only inner’라는 단어로 내장 제거만 주문한 뒤 고분고분 센 돈과 생선을 주고 받았다. 여기는 생선에 소금도 안쳐준다.
대단한 전리품을 챙겨오리라 기대했던 마셜슬록 수산시장 방문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렇다면 실의에 빠진 우리와 함께 털털거리는 고물버스를 타고 함께 온 우리의 A는 어떻게 됐을까?
쫄쫄거리는 수돗물에 다시 한 번 씻겨진 뒤 조리용 소금을 듬뿍 뒤집어 쓰고 접시에 담겨 햇빛 잘 드는 남쪽 발코니에 얌전히 놓여졌다. 갈라진 배 사이에는 면봉을 가로 꽂아 햇살과 바람이 잘 들도록 젖혀두었다. 가끔씩 쇠파리가 기웃대며 A를 간지럽혔으나 그때마다 김군이 등장해 쇠파리를 쫓았다.
그렇게 이틀간 꾸덕꾸덕 말려진 녀석을 물로 살짝 씻은 뒤 아주 얇게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약한 강도의 불로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익혔다. 2시간 넘도록 그렇게 익히니 주방은 물론 온 집안이 짭짤한 생선냄새로 가득 찼다. 어느 덧 노릇하게 익은 녀석의 살점을 아주 조금 뜯어 맛보니.. 짭짤함과 고소함, 쫀득함이 기가 막히다. 그날 저녁, 녀석은 결국 서울서 애지중지 공수해온 여행용 미니 소주의 뚜껑을 열게 만들었다.
<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