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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9 In Season! 아스파라거스 1

스페인어로 esparrago, 독일어로 Spargel, 이탈리아어로 asparagi, 프랑스어로 asperge. 지금 유럽의 식탁에는 아스파라거스가 바쁘게 올라오고 있다. 영국의 한 요리 잡지는 "일년 중 가장 큰 먹거리 사건이 시작됐다"며 "그 오묘한 맛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이 기간, 요리 관련 매스컴들은 표지를 기꺼이 아스라파거스에게 내준다.

그리고 보니 김군이 팔자에도 없던 스위스로 출장갔던 작년 이맘, 그곳 식품매장에서 다발로 포장되어 수북이 쌓여 있는 푸르고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 적어도 '요리'에서 만큼은 지지리 못난 영국인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입맛은 물론, 요리 솜씨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제이미 올리버나 릭 스테인은 그 중심에 있으며 사진에서 보는 잡지 역시 오늘날 영국인들의 요리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주역에 하나다. 5월의 커버스토리는 다름 아닌 아.스.파.라.거.스!

한국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이젠 낯설지 않은 채소다. 이맘 때 쯤이면 대형 할인매장의 신선식품 코너에서도 고무줄에 묶여진 아스파라거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1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일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스프나 메인 요리의 가니쉬(곁들여지는 채소)로 종종 소개됐지만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한 제약 회사가 내건 숙취해소용 음료에서 비롯됐다.

콩나물 뿌리에 많고 숙취해소에 좋다는 아스파라긴산이 결국 아스파라거스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스파라거스는 술을 달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비록 식용법은 여전히 낯설지언정 정서적으로는 가까운 채소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일부에선 아스파라긴산의 숙취해소가 과장됐다며 그 효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무튼 아스파라거스는 봄기운이 촉촉히 배어든 땅의 정기를 듬뿍 빨아올려 수직으로 곧게 뻗은 연한 줄기속에 온갖 영양성분으로 탈바꿈 시켜낸 귀한 채소 가운데 하나다. 퀘벡에선 '채소중의 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니 서양 식탁에서 아스파라거스는 우리네 봄 밥상에 올려지는 드룹 처럼 매우 특별하고 귀한 봄철 먹거리임에 틀림없다.

재배 과정을 잠깐 살펴보면, 근두를 땅에 뭍어 두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면 뿌리를 넓게 퍼뜨리면서 3년 후부터는 싹을 틔우는데 우리가 먹는 아스파라거스는 봄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2~4경 사이에 활발한 성장을 한다고 한다. 이때 얇은 토양을 뚫고 하얀 줄기의 싹이 죽순처럼 솓아오르기 시작하면 이를 싹둑 베어 먹는 식이다. 뿌리가 다쳐선 안되므로 특별한 칼과 기술로 세심하게 베어야 한다는데 언젠가 두 눈으로 확인할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고대 서적에 따르면 최음작용이 있는 모든 식물은 아스파라거스로 분류됐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에는 인과 비타민 A, 옥살산이 풍부하다는 나름의 과학적 이유를 깔고 있다.

실제로 19세기의 프랑스 요리 작가 마르탱은 "부정한 식사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소변에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채는 척도의 하나로 소개했으며 바람둥이로 소문난 루이 14세는 자신의 정원사에게 12월에도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수 있도록 채근했다고 한다. 물론 정원사는 왕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성공했다.



저장기술의 발달로 요즘엔 통조림이나 냉동 형태로 판매되는 아파스라거스도 있지만 역시 맛을 제대로 보려면 바로 요맘때 나오는 녀석 가운데 싱싱한 놈을 골라 찜기로 쪄먹는 것이 가장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계란후라이를 얹어 내는 풍을 일컫는 비스마르크풍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아스파라거스 본연의 맛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오래 전 기억을 뒤적여 보면, 처음 씹을 땐 단단한 질감이지만 몇 번 씹으면 물러지면서 특유의 섬유질이 씹히고 밍밍한 맛이지만 마지막엔 입안에 고소한 풀맛이 남는다. 워낙 다양한 풀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서 보자면 그다지 놀라운 맛은 아닐 듯 싶지만 그 맛에 매료당할 수 있는 입맛을 갖고 있다면 그것도 복이리라. 기회가 닿는 다면 자신에게 '복'이 있는지, 혹은 루이14세의 유별난 입맛은 무엇이었는지,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보길..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