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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5 마지막 환대 7
  2. 2009.02.21 입이 호사로운 볼로냐 생활 3


작은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니코의 식당에 들렀다. 니코는 볼로냐에서만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오고 있는 볼로냐 토박이 요리사다. 지금은 주방에서 은퇴해 가게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고 그의 딸 에리카가 소믈리에로 아버지와 함께 가게 운영을 주도해 가고 있다. 이들 부녀가 운영하는 식당 바띠베코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유행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식당이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아버지는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조심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딸인 에리카는 마르코 파디가처럼 과감하게, 또는 파격적인 요리로 나서야 한다고 얘기하는 입장이다. 지난 번 니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니코는 우리에게 요리와 관련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볼로냐는 바로 마르코 같은 요리사가 필요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요리를 한다. 이는 당연한거다. 다른 요리를 선보이는 실력있는 요리사가 볼로냐는 꼭 필요했는데 마르코가 그 역할을 한거다. 우리는 마르코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내가 마르코처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고 이탈리아 요리를 하면 되는거다. 근데 내 딸은 매일 마르코 마르코 하며 노래를 부른다"


부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분명 있을텐데 요 얘기를 좀 더 파고들면 재미도 있고 나름 깊은 메시지도 건져질게 틀림없다. 사실 이들 부녀의 대립(?)은 비단 바띠베코만의 고민이 아니라 이탈리아 대부분의 식당,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겪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마르코는 우리에게 말하길 "너무 많은 전통이 있다. 그게 숙제고 고민이다"라고 이탈리아 요리사로서 갖는 속내를 털어놨다. 오늘날 서양요리의 중심축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지만 정작 실질적 인기와 부, 유행을 이끌어가는 것은 영국과 미국의 레스토랑이라는 말도 마르코는 덧붙였다.

전통에 대해선 조금 다른 입장의 니코지만 그도 결국엔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이 "30년 전에는 유럽 어디를 가든 볼로냐에서 왔다고 하면 '오~ 볼로냐! 요리의 도시!'라며 반겨줬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되묻는다" 라며 달라진 세상을 쓸쓸히 푸념했다. 고루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전통이라곤 없는 영미권이 요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얘기니 다소 놀라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이미 올리버, 램지 고든은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저주하는 영국 출신이다. 여기에 알랭 듀카스, 기 사보이, 노부 마츠히사는 프랑스와 일본인이다. 세계적 유행을 선도하는 이탈리아 요리사를 딱히 꼽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여기 와서야 알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현대적인 기틀을 마련했다고 추앙받는 괄띠에르 마르께지 등의 헌신적인 요리사가 없는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아직도 전통과 내일 사이에서 고민, 어쩌면 방황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째 남 얘기가 아니네 라는 생각이..


볼로냐는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주도.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이탈리아 대표음식이기도 한 세 가지, 프로슈또, 모르따델라(흰 비계가 박힌 부드러운 소시지), 빠르미쟈노레냐노 치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지만 곧 다음 기회를 벼르며 나서는 길이니 아쉬움은 접어두려고 한다. 암튼 점심시간에 바띠베코에 들렀고 그들에게 작은 기념품을 선물했다. 모두 반색을 한다. 점심을 얻어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끝내 자리로 앉힌다. 결국 프로슈또와 볼로냐의 대표 요리 또르뗄리니를 얻어먹고 식당을 나섰다.



또르뗄리니는 치즈와 프로슈또를 갈아 소를 채운 작은 만두같은 요리로 이를 뜨끈한 쇠고기 육수에 담아 숟가락으로 육수와 함께 떠먹는 요리다. 국물은 갈비탕 국물과 거의 똑같다. 또르뗄리니는 작년에 빠르마에서 먹어보고 이번이 두 번째. 좀 아까 집주인 엘레나가 다녀갔다. 키를 전해줬고 작별인사를 나눴고 그녀는 작은 쨈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생각지도 못한 점심환대에 선물까지 받아챙긴 하루. 마무리가 좋다. 내일 프랑크푸르트 공항만 잘 빠져나가면..^^



Posted by dalgonaa


볼로냐 두오모 맞은 편의 어느 길. 저 뒤로 두에또리(Due Torri-두 개의 탑)이 보인다.

볼로냐 삼일째, 숙소를 옮겼다. 하루 79유로(15만원)의 살인적인 가격을(사실 이탈리아, 또는 유럽 어딜가나 호텔은 이 가격 안팎이다)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 해서 볼로냐 도착 첫날, 레스토랑 사람들을 만난 뒤 오후에 길을 나서 좀 더 저렴하게 머물 호텔을 2시간 가량 찾아 헤맸고 결국 문열고 나서면 볼로냐의 상징이라 할 두에또리를 바로 코앞에 둔 위치에 하루 60유로짜리 호텔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레스토랑과도 걸어서 불과 10분이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가정집을 소박한 호텔로 개조한 곳인데 호텔 한 켠에 주인이 거주하는 방이 있는 걸로 보아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인듯 싶다. 민박집같은 정서가 느껴져 좋고 무엇보다 무선인터넷이 공짜고 방이 넓다. 다만 60유로의 방은 화장실이 딸려있지 않아 복도에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슬쩍 둘러보니 투숙객이 거의 없는 듯 싶어 그냥 우리것처럼 쓰면 되지 싶다.


수쉐프(부주방장) 에리코가 '많은 편은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주문표를 펼쳐보이고 있다.

취재 이틀째를 맞는 마르코 파가디 비스트로는 자정이면 문을 닫지만 손님이 밀려드는 금요일과 토요일의 경우 2시가 넘어서야 영업이 끝난다. 어제 금요일도 그랬다. 마르코의 프랑스인 부인과 주말에만 고용하는 웨이터가 가세했고 주방안은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쳐내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주방은 이태리어와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한국어가 뒤섞여 벅적대는 가운데 이태리 파스타, 프랑스 프와그라, 영국식 피쉬앤칩스와 일본식 초밥이 정확한 손맛과 타이밍으로 만들어져 홀로 분주하게 날라졌다. 몸으로 하는 모는 분야의 일이 그렇겠지만 요리사라는 직업도 어느정도 몸이 익숙해지면 그때분턴 리듬을 타고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턴 1개 대대의 주문이 들어와도 물 흐르듯한 리듬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낼 수 있게 된다. 요리사로 가는 과정에서 대개 거치는 견습생의 시간이란 어쩌면 레시피나 기술은 둘째 문제고 바로 그런 리듬을 탈 수 있는 감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진하고 뜨끈한 육수에 담가 먹는 또르뗄리니.  

주방에서 이들과 섞여 있다보면 자연스레 이것저것 맛보게된다. 샴페인, 라비올리, 프와그라, 피시앤칩스, 디저트 등은 물론이고 이들과 함께 먹는 점심과 저녁은 그 자체로 값비싼 식사다. 점심은 쁘리미(파스타) 담당의 가에따노가 준비하고 저녁은 세꼰도(육류와 생선) 담당의 에리코가 준비하는데 어제는 사진에서 보는 것들이 등장. 간만의 촬영이 빡쎄서 힘들지만 맛의 지평을 넓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니 호강이 아닐 수 없다.  

샤프란 리조또

사과쨈, 푸와그라, 감자튀김, 그리고 소금 살짝

종이 고깔에 담아내는 피시앤칩스. 소스는 토마토 베이스.

아르헨티나산 새우를 얹은 라비올리. 거품은.. 이름 까먹었음..

5리터 분량의 와인을 냄비 바닥이 비칠 정도의 양으로 졸여낸 소스.

어제 요리사들의 점심식사 리가또니.

어제의 저녁식사 숭어구이

점심식사 모습. 가에따노가 가장 자신있어 하고 좋아하는 파스타는 살시치아(갈을 고기로 속을 채운 일종의 소시지)가 들어간 파스타인데 이태리를 떠나게 되면 그 맛을 떨쳐버리기 힘들 것 같아 최근에 살시치아 장인을 만나 그 레피시를 익혔다고 한다. 그 비법은 아무에게도 안가르쳐줄꺼라는데 다만 자신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인사라도 남겨주는 사람에 한해서는 살짝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ㅋㅋ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