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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6 오랫만에 한상 가득. 9
  2. 2009.01.19 월요일을 생각하며 6


어제 강양이 볼로냐의 집을 둘러보고 딱 저녁먹을 시간에 돌아왔다. 베로나는 오후들어 살짝 쌀쌀했는데 볼로냐는 봄기운 완연에 햇살 짱짱해 속으로 '역시 볼로냐!'라는 탄성을 내내 지르며 돌아다녔다고. 특히 볼로냐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는 EATLY(이틀리-지역생산물 판매 중심의 샾으로 식당, BAR, 서점을 갖춘 복합공간)의 발견으로 비행기 타기 전까지 볼로냐의 훌륭한 놀이터가 될 수 있겠다며 살짝 들떠있다. 이틀리.. 이름 참 잘 지었다. 2주간 머물 집은 건물 꼭대기층으로 작지만 독특한 구조고 햇살 만빵으로 받아내는 티테이블이 놓인 작은 발코니도 갖추고 있단다. 소파베드가 총 3개가 있어 3명이 지내는데 문제가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주인 아줌마와 지금 현재 그집에 묵고 있는 40대 여자가 번갈아가며 말들을 쏟아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특히 지금 묵고 있는 여자가 영어를 좀 할 줄 알아 강양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고 시시콜콜 설명하고 했다는데 왜 아니겠나? 이탈리안데..

"여기 소파베드가 3개가 있지. 두 개를 붙여놓으니까 더불이 되고 남는 하나는 싱글이 되지. 난 기분에 따라서 하루는 더블, 하루는 싱글, 왔다갔다 해"

250GB 하드로 편집을 하기는 역시 무리다. 결국 어제 처음에 캡쳐받은 영상들 가운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어정쩡한 영상들을 싹 지워내고 140GB로 확보된 빈 공간에 가편에서 걸러진 OK장면 위주로 다시 캡쳐를 받았다.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둥둥 떠다니던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그제서야 좀 걷히고 하나씩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이 탄력을 쭉 이어가야 한다. 볼로냐로 떠나기 전까지 달려!!

집보느라, 캡쳐받느라 애쓴 두 입맛을 위해 남은 생선을 요리했다. 현재 물 오르고 있는(^^) 김군 솜씨에 있어 한식부분 최강의 생선요리는 생강푼 간장에 절여 구운 흑도미와 소금절인 고등어를 고춧가루 살짝 뿌려 찜기에 쪄내는 자반찜이지만 레몬 한 망태가 냉장고에 굴러다니고 있으니 오늘은 흑도미 구이다. 요리방법은 간단하지만 이게 오븐이 있어야 제맛이 난다. 특히 오븐이 있으면 맛에 있어 일타쌍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조림에선 밥반찬으로 그만인 무를 얻을 수 있고 구이에선 고소한 생선을 얻을 수 있기 때문. 무 하나 보고 조림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먼저 생선과 무가 잠길 정도로 자작하게 물을 붇고 간장을 짭짤할 정도로 섞은 뒤 다시마, 마늘, 양파, 생강조금, 후추, 청주(없으면 소주, 그것도 없으면 말고)를 뿌려넣고 재워둔다. 여기서 맛의 포인트는 생강으로 요리할 때 간장 품에서 피어오르는 생강향은 곧바로 술을 찾게 되니 주의할 것.

한 30분 끓이면 생선이 익고 국물에도 맛이 배고 무도 절반 정도 익는다. 이때 생선만 부서지지 않게 따로 낸 뒤 곧바로 달궈진 오븐에 투입. (철망에 기름 살짝 바르고 생선을 얹어 구어야 나중에 들러붙지 않더라는) 조림국물은 계속 끓이면서 무를 익혀주면 되고 이때 한 국자 정도 국물을 따로 건져내 자글자글 구워지는 생선살에 뿌려주면 더욱 좋다. 15분~20분 정도면 생선껍질이 바삭하게 익어질 정도로 익으니 꺼내서 접시에 담고 레몬을 취향대로 잘라 장식하면 그만. 파슬리를 생선 위에 뿌려도 좋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살점은 젓가락질을 즐겁게 하고 포실한 살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따라 올라오는 생강향은 고급 일식집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엔 청주나 사케, 화이트와인이 벗이다. 생선 한 면은 그렇게 살을 발라먹은 뒤 생선을 뒤집기 전에 먼저 작은 종지그릇에 조림국물을 한 국자 떠넣는다. 그리고 레몬 한 조각 짜넣고 파슬리, 혹은 고수를 살짝 다져 넣어 젓가락으로 휙 섞어주면 맛의 여정은 순식간에 일본에서 태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생선 한 점 떠서 이 소스에 적셔 먹으면 또 다른 마력을 느낄 수 있으니.. 허허 술 더 사와야겠네.

저 가운데 초점맞은 곳이 애간장을 태운다.


김을 넣은 계란말이.


무 조림. 앞에 보이는 흰 채소는 이탈리아에서 생선요리에 종종 곁들어 먹는 것으로 이름은 모르겠고 맛은 쓴데 무와 양파로 달달해진 국물이 저놈으로 인해 다시 써졌다. 허나 그것대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우리식 김치, 양배추 무침


밥짓는 실력은 이제 고수. 쫀쫀하다.


 이탈리아에서 즐기는 소박한 가정식

Posted by dalgonaa

월요일 아침, 날씨가 잔뜩 흐리다. 햇살이 방안을 칼날같이 비추는 맑은 날씨면 해가 점점 고도를 높여가는게 느껴져 이불을 박차고 나오곤 하지만 이런 날은 아침이나 오후나 별 다르지 않게 느껴지니 그 동작이 훨씬 굼뜨게 된다.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보며 두서없는 생각에 젖었다가 정리하기를 반복, 그리곤 어제가 일요일이었다는 걸 잊고 있다가 잠시 월요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월요일.. 여행자에게 월요일이란게 뭐 별 의미가 있겠나? 사실 요일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집세를 내야하는 한 달의 단 하루를 제외하고 날짜와 요일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게 여행자에게 주어진 특권일지도. 딱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볼까? 끔찍한 기억이지만 전혀 다른 시간과 환경에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건 묘미가 있다. 마치 술마시다 군대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것 처럼. ^^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주말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한자유를 얻은 마냥 신바람이 난다. 동행없이 저녁으로 순대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면 그것대로 적적함이 있어 즐겁고 일주일간의 끔찍한 전투를 끝낸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만나 된장찌개 곁들여 삼겹살을 구우면 맘은 푸근해지고 피로는 씻겨나간다. 서글프게도 먹는 낙 뿐이었지만 즐거운 휴일의 시작임에 틀림없었다. 술로 지난 5일간의 지친 마음은 회복됐으나 몸이 망가졌으니 토요일은 휴식의 시간. 모처럼 동네 산책도 즐기고 잠시 짬을 내 동네 서점도 다녀오고 저녁에 맛있게 요리해먹은 장을 보러 인근의 시장이나 수퍼를 다녀왔다. 그것도 귀찮으면 동네 맛집책자를 뒤적이며 꿀맛같은 토요일 저녁의 낭만에 곁들일 요리는 뭘지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렇게 토요일이 지나고 나면 이제 남는 건 달랑 1천원짜리 지폐 한 장 같은 느낌의 일요일 뿐.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나면, 정확히는 출발 비디오여행을 보고 나면 휴일 기분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박경추 아나운서의 팔을 부여잡고 제발 이대로 끝내지 말아주길 애원하고 싶었던게 얼마였던가. 어김없이 이어지는 재방송 드라마는 조바심나는 일요일 오후를 더욱 낡고 참혹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월요일의 공포가 그렇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영원히 떠 있어주길 바랬던 해가 어느새 땅속으로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아무리 맛있는 식사라도 저녁을 먹고나면 포만감보다는 공허함이 뱃속을 가득 채웠다. 종종 주말을 함께 떠들며 보냈던 친구를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고 돌아오면 어제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던 길, 가게, 불빛은 전혀 딴판으로 다가왔다. 별빛도 사라진 도시의 밤, 자전하는 지구를 원망했다. 

아침 7시 경이면 출근을 서두르는 차소리나 알람시계 소리가 아니어도 자동으로 몸이 깨어났다. 순간 깨질듯한 두통이 몰려오지만 화장실 거울앞에 어느새 칫솔을 입에 넣은 거울속의 자신을 쾡한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그 통증도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오늘은 또 무슨 시덥지 않은 현실들을 지켜보며 애써 진지한듯 열심히 일하는 척 해야할까?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 순간 만큼은 자의식을 지워버고 로보트처럼 생각없이 움직이고 싶은데 이는 비단 나만의 바람일까? 집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 속을 알 순 없으나 아마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비슷한 곳으로 끌려가는게 틀림없는 인간들. 아무말 없이 서 있는 그 무심함이 싫어 신문을 펼쳐들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한다. 수용소행 열차에 몸을 싣는 듯한 어눌한 풍경.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 모자른 잠이나 확 자버릴까? 아니면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고물차를 몰고 나와 자유로를 달려 북부간선을 갈아탄 뒤 구리를 지나 양평, 홍천을 거쳐 동해바다로 달려버릴까? 도발이 유혹처럼 다가오는 것도 잠시, 오 맙소사.. 빈자리는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고 다만 중간쯤에 내 한몸 세워놓고 있을 통로를 기대했는데 요금을 찍고나자 더 이상 한 발짝도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사태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버스는 출발하고 서고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애초 기대했던 중간쯤으로 떠밀려 와있다. 가끔 운전기사의 과속을 경고하는 기계음이 불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조용히 가뿐 숨을 몰아쉬는 다른 승객들 틈에 끼어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을 영혼없는 시선으로 던질 뿐이다.

일산을 출발한 버스가 화정에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버스안은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버스에 오른다. 푸시맨을 기억하는가? 지하철의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승객을 차내로 밀어넣던 사람들. 화정의 버스정류장에는 그들과는 좀 달리 입이 바쁜 푸시맨들이 있다. 버스회사 직원이 몇명 나와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 주세요!"라고 승객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한결 낮은 톤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요금 찍어주시구요". 뒷문으로 오르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사람에 막혀 요금을 못찍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어김없이 '요금'을 닥달하는 그를 향해 위태롭게 버스기둥을 부여잡고 있던 40대 중반의 멀쩡한 양복이 성질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 좀 그만하세요!"

햇살이 차창에 부서져 반짝이는 어느날 아침이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도대체 여기 왜 이러고 서 있는걸까? 버스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인 저 사람들은? 뭘 위해서? 난 왜? 이 버스에서 내리면 천국의 문이 열리기라도 하는걸까? 부질없는 질문을 되뇌이고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밤에 마약처럼 취해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 어느새 광화문에 도착했다. 근데 때로는 놀랍게도 천국이 펼쳐지곤 했다. 버스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맞은 편에선 어디어디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이 키타와 앰프를 동원해 포효하는 설교와 저들만 신난 가락으로 굉음을 퍼부어댔다. "주여~!"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가? 수륙장갑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빗발처럼 쏟아지던 총탄에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던 장면. 흡사한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을 말아드신 부동산, 그 장사로 부자가 된 장로님이 어찌어찌하여 대통령까지 꿰차고 앉은 현실을 보노라면 켁 하고 숨이 막혀왔다.

이런저런 삶의 악연을 끊고자 떠나온 길. 다시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본다. 그리곤 문득 '앞으로 뭘 할지 좀 더 선명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뻬루자의 이 집이 좋은 이유 하나는 지금까지 지내온 집들 가운데 가장 조용하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렇게 조용한 집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에 빠져들기에 좋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자 그게 이번 여행의 의미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불혹의 나이에 새롭게 해야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괜히 신바람 난다는 생각까지 든다. 재미없는 삶을 안주삼아 씹으며 늘 얘기했던 식당, 즉 우리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 그렇고 이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야 할 일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의 준비. 천둥벌거숭이처럼 떠나온 길이었고 모아둔 얼마 안되는 돈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가고 있는 현실이 두렵기도 하지만 돈은 돌고 돈다는 해묵은 믿음에 기대려 한다. 그리고 지난 연말 뻬루자의 한 공터, 한시적으로 열렸던 장터에 조악한 악세사리를 가지고 나와 팔던 방글라데시 출신의 나비가 우리에게 던진 역시 해묵은 메시지, 그러나 은근히 힘을 주는 이 말을 새삼 떠올려 본다. "이봐, 우린 최선을 다 할 뿐이야. 나머진 신이 다 알아서 결정하신다고"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