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0.22 창업일기-2 15
한국 Korea 160409~2009. 10. 22. 16:16
인테리어 공사 시작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월요일에서야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될 것 같다는 것이
공사 관계자분들의 이야기.
쫓기는 기분과 초조함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10개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서는 과정이 창업이라면 이제 겨우 한 고개를 넘었을 뿐이건만
아침마다 머리감을 때 뽑혀나오는 머리카락 수는 당최 줄지를 않는다.
문 열때쯤엔 대머리가 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태산인데
더 큰 걱정은 역시 식당의 안착여부.

철물점이 이사하며 남기고 간 묵은 먼지에 더해 그간 인테리어 협의차, 또는 격려차
방문한 여러 인사들의 담배꽁초와 빈 술병을 마냥 방치하다가 오늘 깨끗히 쓸어냈다.
공사가 좀 늦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들도 또한 많은 만큼
좀 정리된 바닥에서 구상에 집중하려고.


+++


왕산건재는 이 자리에서 7년간 장사를 했다고 하니 지난 2003년에 문을 연 셈이다.
 우연히도 같은 해 가을무렵 우리는 서교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좀 더 저렴한 공간을 찾아
이곳 철물점과 불과 100미터 인근에 사무실을 열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곳 철물점에서 몇 번 자잘한 물건들을 구입했던 것도 같다.

철물점은 아저씨가 2.5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줌마는 안에서 TV를 보며 철물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인데
가게를 내놓는 이유는 아줌마의 건강이 안좋아진 탓이라고.

상인과 상인과의 대화에서 역시 본론은 권리금 문제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랑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권리금 10%라도 좀 깎아보려 했지만 양보가 없었다.
쇠약한 아줌마의 힘없는 목소리,
현장의 잔뼈가 굵은 아저씨의 30%는 해독이 안되는 빠르면서 새는 말투,
대화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방법을 고민하다가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얘길 건네고 잠시 냉각기를 두기로 했다.
우리가 좀 뜸을 들이면 철물점측에서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까 했던 것.
그러던 중 어느날 연락이 왔고 아줌마가 얘길 건넸다.

"어떻게, 계약 할꺼에요?
지금 다른 부동산이 손님 데리고 가게보러 왔거든요"


이런..
우리가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약 할겁니다. 제가 오후에 곧바로 가게로 갈께요"


+++


좀 더 버티면 더 좋은 수가 났을까?
알 수 없지만 홍대, 또는 이른바 'HOT 상권'에 해당되는 곳은
마땅히 '권리'라고 내세울게 없어도 단지 그 자리에 점포를 깔고 앉았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 아닌 권리금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른바 '바닥피', 또는 '멍석피'.

우리가 그 돈을 지불한 셈인데 불합리한 관행에 맞서 정의를 바로세우려는 것이
장사의 목적이 아닌 이상 이에 맞설 방법은 없다.
이곳에서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김밥, 또는 꽃을 팔고 있는
허름한 점포의 경우 단지 큰 길가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이 5천에 이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권리금과 관련해 하나 덧붙이면 
홍대, 정확히는 서교동 일대에서 독특한 스타일로
와인의 맛과 멋을 선보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모 카페가 가게를 털고
우리 식당과 멀지 않은 곳에 새롭게 자리를 마련중이다. (식사메뉴로 뭘 낼지 몹시 궁금..)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 건물주인의 딸이 그 자리를 탐내 결국 가게를 나오게 됐다는데
문제는 건물주인에게 가게를 돌려주는 것이므로 권리금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한푼의 권리금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떠도는 풍문.
가게를 내고 보니 이런식의 '업계 소식'도 들리는 것이 참으로 기분 묘하면서도
그게 사실이라면 결코 남의 사정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


인테리어 디자인, 내장재, 조명, 출입구,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각종 주방기구들.
장사를 위한 필수요소들의 신상명세가 대부분 결정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 하나가 아직도 해결이 안나고 있으니
바로 '가게 이름'이다.

이름이 나와야 사업자등록증도 교부받을 수 있고
홍보전략도 세울 수 있고 하다못해 명함이라도 만들 수 있다. 
해서 어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작정을 하고 이름에 대해 몰입했는데
좋은 소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보 몇 개가 추려졌다.

본 죠르노 (Buon jiorno)
알로라 (Allora)
쁘레고 (Prego)
꼬메바 (Come va)

모두 이탈리아 말들인데 본 죠르노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싶고,
참고로 저녁인사는 보나세라 (Buona sera).
알로라 (Allora)는 이탈리아에서 길거리건 TV건 어디서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화중 한 단락을 마치고 다음 단락을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를 때나
말문을 열기 직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일종의 말의 추임새다.
가령,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 (한 숨 쉬고) 
알 로 ~라 
(그리고 다시)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다"


쁘레고(Prego)는 '천만에요' 또는 '별말씀을'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지만
이 외에도 쓰임이 광범위한 만능의 말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버스에 오르다 상대방에게 양보할 때 가볍게 웃어보이며
"쁘레고"
웨이터가 손님에게 주문을 주문받기 전 가볍게 한 마디 
"쁘레고"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하며
"쁘레고"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 대답 역시
"쁘레고"
 
최근에 대형 마트에서 가보니 깡통음식을 만드는 미국 Cambell사의
파스타용 토마토 소스의 제품 이름이 
쁘레고(Prego) 더라는..

꼬메바 (Come va)는 지인들 간의 가벼운 인사.
"어떻게 지내?" 혹은  "잘 지내?" 정도.
헌데 서교동쪽에 보니 '꼬메스따 (Come sta)'라고 해서 
같은 뜻을 가진 와인바가 있더라는.
해서 이건 제외될 듯.

세 글자 이름이 발음상 좋다는 압도적 지지아래
몇 분은 다른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따볼리노 디 상수 (Tavolino di 상수) - 상수동의 작은 테이블
이라거나 또는
꼬메 우나 볼타 (Come una volta) - Once upon a time
라는 제안도 있었다.
심지어
마피아(Mafia) 도.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번주말 안으로는 이름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현재 살고있는 집이 강동구 상일동과 의정부로 각각 갈라져 가족집에 얹혀 있는 실정이라
이래저래 어려운점이 있는데 장사를 본격 시작하면 출퇴근이 엄청 힘들어질 것 같다.
 해서 가까운 곳에 잠만 잘 수 있는 고시텔 따위를 알아볼까 한다.
일산 살던 시절, 지인들에게 술과 밥과 잠을 모두 해결해줬지만
당분간 잠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술과 밥이 근사해지니 그게 어디냐!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