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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8 이태리에서의 어떤 공상 3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을 하나 부어 먹고 신김치 한 조각으로 입가심을 하고 학원 가기까지 남은 40분 동안 밤새 다운받고 있는 '식객' 열한번째 편을 다운받은 지점까지 봤다.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인터넷을 눌러보니 달고나의 방문횟수가 놀랍게도 1만을 넘어섰고 포털을 누르니 KBS 사장 해임소식이 톱을 장식한다. 잠시 밑으로 밀려난 올림픽 소식은 그러나 곧 톱으로 올라와 앞으로 2주간은 모든 정치적 이슈를 먹어 치우겠지만..

학원엘 가려면 늦어도 8시 20분에는 씻어야 하는데 8시 10분 쯤 강양에게 "오늘은 그냥 좀 쉴래"하고 말했다. '무슨소리야, 빨리 씻어'라고 완강하게 나왔다면 주섬주섬 일어나 씻으러 갔겠지만 그녀의 반응은 "10월에 어디로 갈지 구상이나 해놔"라며 차분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현재 김군반의 강사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김군의 마음을 헤아린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향후 행선지에 대해 그녀의 주문대로 결정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실 창을 등지고 앉아 있자니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등짝을 시원하게 문지르고 지나가는 느낌이 좋은 아침이다. 한국소식을 끊고 지낸다면 더없이 좋은 아침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순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뭐 아침부터 머리 지끈거리는 얘길하려는건 아니고.



>> 강양과 식사를 즐기는 엘리자베타. 초점이 뒤에가서 맞았는데 오히려 이 사진이 나은 듯.

요 며칠 강양은 엘리자베타와 붙어 다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됐던 이태리의 베로나에서 온 그녀는 책 만드는 일을 하는 45살 이태리 북부 여성이다. 영어도 제법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 강양과 그 호흡이 잘 맞는다. 며칠 전엔 김군은 쏙 빼놓고 두 사람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1인당 30유로, 거의 5만원에 육박하는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뭐 먹고 얼마 썼냐를 꼬치꼬치 캐묻는 김군의 질문에 강양은 "이제 이태리 북부 가서 미아될 일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태리의 거점 하나가 생긴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외국친구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집에라도 초대해 없는 재료로 나름 근사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그런 의도가 노골화된 것일 뿐 ㅋㅋ.

엘리자베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서 요리해먹을 시간이 없어 주로 외식을 즐기는 탓에 일반적인 이태리 사람들과 자신은 조금 다르다고 자평한다. 집에서, 가능하다면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먹는 것이 이태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풍경이라면 자신의 생활을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녀 왈 "우리 오빠 내외가 곧 50살이 돼. 하지만 여전히 매주 한 번은 엄마집에 가서 엄마의 요리를 먹지. 잘 들어, 매 월이 아니라 매 주야"



>> 홍합과 조개 볶음. 그러나 어패류의 맛과 신선도에 있어서 한국의 품질을 따라올 것이 있을까?

마침 강양 수업시간에 '5년 후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강양은 이에 대해 "아마 작은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을테고 자신은 홀에서, 남자친구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을꺼다"라고 말했단다. 이에 대해 엘리자베타는 "그때 쯤엔 나도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고 수 처럼('수'는 강양의 영어 이름)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여유있게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그러자 이번엔 강양반의 또다른 이태리 친구인 알레산드라가 거들고 나섰다.

"수가 만약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이태리 브랜치는 내가 맡겠다"라는 것. 컨설팅이 직업인 그녀는 그러면서 식당의 컨셉도 바로 공표했는데 '젋어지고 싶다면 한국인 '수'처럼 먹어라'.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강양 젊은 얼굴을 보고 강양반 모든 친구들이 '경악'했고 그 비결이 '한국음식 탓이다'라고 한 마디 툭 던진 것이 만들어낸 재미난 결과다.

이 모든, 시시껄렁 뜬구름 같은 얘기를 듣고 나선 한숨을 길게 뽑았지만 그냥 흘려보내기가 왠지 아깝다. 관광객과 예술품이 차고 넘치는 피렌체에서 밥장사를 하는 것도 제법 그럴싸 하겠지? 특히 요즘처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럼 제주도는 어쩌지?.. 공상처럼 친환경적, 평화적, 그리고 의외로 생산적인 놀이도 없다 ^^)



>> 보기만 해도 턱근육을 뻐근하게 만드는 저 놈. 다른 모든 상징을 떠나서 이 친구가 다른 입맛의 사람들에게도 환영을 받을까? 미디어에선 그렇다고 하는데 난 도무지 미디어를 믿지 못하겠으니..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