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사는 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6.23 단무지 공장 2
한국 Korea 160409~2014. 6. 23. 22:19

우리 주방에서 음식이 나간 후 접시가 되돌아오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덜 익어서,

또 하나는 짜서. 


최근에 덜 익어서 접시가 되돌아오는 횟수가 부쩍 많아진 요리는

'까르또쵸'라고 불리는 생선찜 요리. 

손질한 숭어에 바지락과 채소를 넣어 종이호일에 한 번 싸고 다시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오븐에서 익혀내는 일종의 찜요리인데 숭어 한 마리를 통으로 넣어 익히다 보니

가끔 숭어 중심까지 열기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살짝 덜 익는 경우가 있다. 

대개 30분 정도 250도 오븐에 넣어두면 잘 익어서 나왔으나

최근들어 이런 사고가 빈번해졌으니 그 원인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다.


첫 째, 너무 잦은 오븐 문의 여닫기.

식사빵을 데우는 것도 같은 오븐이기에 테이블의 손님이 바뀔 때 마다 

오븐문을 여닫아야 한다. 이때마다 오븐 열기는 애초 지정한 온도로 오르기도 전에 

열기가 빠져나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요리에 영향을 주지 싶다.

사실 가게가 조금 넓게 확장되면서 

그만큼 손님수가 증가한 탓에 오븐을 여닫는 횟수도 자연스레

증가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놔야하는 세상의 섭리를 

여기서도 확인하는건가 싶다.


둘 째, 오븐문 가장자리에 부착된 패킹의 노후화.

이제 만 5년간 오븐을 사용하면서 중간에 한 번 고장으로 수리를 했고

가끔씩 갈아주는 내부 조명말고 또 손대야 할 게 있을까 싶었는데

내부 열기가 외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나름 역할을 하는 바로 이놈이 속을 썩이지 싶다. 

압력밥솥 뚜껑 안쪽 가장자리에 보면 고무 패킹을 볼 수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셈.





한동안은 부드러운 고무질감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단단해지고

어느때부턴 딱딱해지더니 급기야 조금씩 깨지다가 결국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해서 오븐 구입처에 문의하니 별것도 아닌것처럼 보이는 이 패킹이

하나씩 네 귀퉁이를 두르면 총 40만원이란다. 

충격적인 금액.


얼마전 황학동 중고매장에서 같은 오븐(전기)을 250만원에 본 마당에

40만원을 주고 기껏 저 패킹을 갈아야 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우기 우리가 쓰는 건 가스방식이고 밖에서 본 건 전기방식인데

두 가지 모두 사용해본 결과 전기오븐이 여러모로 더 좋다는 점에서 이 기회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오븐을 바꿔버릴까 고민도 된다. 


암튼 살짝 충격을 먹고 숨을 가다듬으며 자구책을 찾는 중. 


덜 익는 요리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집 파스타를 한 입 넣은 후 면이 덜 익었다며 클레임을 거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건면의 경우 중심의 덜 익은 심이 살짝 씹힐 정도인 알덴테(Al dente)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집 파스타의 중요한 원칙이기에 이를 지키고자 제법 노력을 한다. 

푹 퍼진 라면이 맛이 없듯 파스타도 같다. 

이 점만 이해한다면 파스타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곧 사진을 첨부해야겠다)






***





지난 번 제주여행에서 만난 김성제 감독은 몇 년 전 구입한 작은 땅에 

작은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그는 영화작업도 계속 할 의향이 있지만

 자본이 그 선택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알기에 자신의 또 다른 자리로

제주도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을 가꿀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그의 숙소에서 발견한 책 <건축가가 사는 집>은 당장 그에게 필요한 책임에 틀림없지만

망원동에 별도의 주방을 마련한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싶어 

제주에서 돌아온 뒤 냉큼 그 책을 구입했다. 

2달이 넘었나.. 싶은 망원동 주방을 우리끼리는 때론 이렇게 부른다.

'단무지 공장'


문화적 감수성이라곤 하나도 들어서 있지 않는, 지금은 그야말로 '공장'인 망원동 주방.

차가운 스텐레스들을 전면에 세운 뒤

면을 만들고 빵을 만들고 생선을 잡고 채소를 다듬는,

당장 급한대로 효율만 채워진, 어쩌면 상수동의 식민지같은 공간. 

이 마저도 정리나 청소가 제대로 안돼있으면  

한 순간에 단무지 공장으로 변모되고 말기에 우리는 자조섞인투로 그렇게 부른다.


상수동 주방에서 해치우기에 벅찬 일꺼리들을 이곳에서 해결하고

동시에 넓은 공간의 장점을 살려 한 켠에 우리들의 복지공간을 창출하자는 것이

망원동 주방이 갖는 역할이자 의미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기에 

서둘러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당장 우리에게(나에게..) 떨어진 과제다.

(어깨가 무겁다. 어제 부황도 떴다. 물론 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사실 망원동 주방공사가 늦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섞여있지만

(초반 각파이프를 대량 구입해 자르고 붙이던 중 

아래층에서 거센 항의를 받아 기세가 한 풀 꺾인 후 회복이 안됨..)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 그리고 그 게으름을 조장하는 상상력의 부재다. 

백지같은 공간에 뭘 어떻게 채워넣을까 고민하다보면 영 신통치않은 결과물만

머릿속에 맴돌곤해서 다시 풍선처럼 터뜨려버리고 백지로 돌아오기가 반복된다.

하다못해 당장 시급한 바닥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왔다. 

왁싱작업이라곤 한 번도 한 적 없어보이는 메마른 테라조바닥은 

통행이 잦아지면서 미세한 먼지를 일으키고 있으니 바닥이라도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함에도

역시 공간 전체로 생각이 번지다보면 이도저도 결정을 못내 손을 놓고 마는 것.  

악순환에 빠진거다.


그런 와중에 만난 책 '건축가..'는 이 악순환을 끊어주지 않을까?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세심한 감성과 지식들로 빼곡한 글도 좋지만

다양한 사례로서의 사진들도 좋고 건축가들의 작은 공간에 담겨진 

상상력들이 망원동 주방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에 대한 영감을 새록새록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단무지공장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도다.






(입주 초기 집기가 싹 빠져나간 망원동 주방 공간)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