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5 거미줄을 걷자 1
  2. 2008.12.29 이제 사람사는 집 같네.. 6
한국 Korea 160409~2009. 6. 25. 18:15

블로그.. 그간 여기저기 거미줄 많이 쳐졌다. 귀국 후 사람들 만난다는 핑계로 관리를 게을리 한 탓도 있고 '이제 뭘 쓰나' 하며 마음을 못잡은 것도 있다.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제 더이상 그곳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점에서 지나간 옛이야기나 풀어내는 것이 괜한 궁상은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도 발목을 잡았고..

그리고 도저히 어쩔수 없는 그것, 게으름.. 아무튼 바질은 나름 쑥쑥 커가고 있는데 종이컵에 담긴 그 모습을
이제는 갈아치워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Soo & Kim's salone의 식당을 열기위한
한국에서의 여정이 시작된 셈이니 그 여정의 자잘한 일들도 기록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년 훌쩍 떠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 아니던가! 
(우리 스스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계획이지만..)

sss


 

바질(Basilco)는 제법 많이 자랐다. 지난 주에 인근 야산에 올라 모기에 뜯겨가며 붉은 마사토와 검은 낙엽토를 퍼와 섞은 뒤 스치로폼 박스에 옮겨심는 대대적인 분갈이를 했다. 규모로 보면
소꼽장난같은 일이지만 흙을 퍼담고 비율을 맞추고 햇살과 바람에 신경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성장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가 무엇인지 몇 번씩 고민하는 과정 모두가
스스로에게 중요한 경험이자 정보일 수 밖에 없다.

바질의 경우 햇살을 굉장히 좋아해서 적어도 6시간 이상은 햇빛을 보게 해주라는데 집의 위치가 좋지 않아
하루 3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자라고는 있으니 다행이다. 
떡잎을 내고 이후 본잎이 자란 뒤 새 잎들이 나오는데 처음 나온 본잎이 제법 커지면서
양분을 저 혼자 독차지하는 것 같아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줬다. 
잎을 따내니 손에서 바질향이 진동한다. 슬쩍 물에 휘저어 한 잎 넣고 씹자 
진한 향이 가득 퍼진다. 음.. 역시.. ㅋㅋ



잎을 쳐낸 자리에는 새로운 잎이 그 두 배의 숫자로 나오니 아까워할 이유는 없다. 
이탈리아에서 바질은 제노베제(Genovese)와 나폴레따노(Napoletano)로 나눠지고
각각 제노바(Genova)와 나폴리(Napoli)에서 유래된 듯 싶은데 
일반적으로 파스타에 소스로 비벼먹는 바질 페스토는 제노베제로 만들어 맛이 감미롭다는 특징을 갖고
 나폴레따노는 맛이 강해 피자나 샐러드용 소스로 만든다고 한다. 
책에서 일러주는 내용이 이렇고 바질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식재료 풍토에선
뭐가 됐건 시중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반가울 듯 싶다. 참고로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사온
씨앗은 제노베제고 국내 종묘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역시 제노베제가 주류를 이루는 듯 싶다.
그리고 보니 몰타에선 나폴레따노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여름에 쏟아져 나오는데 한움큼 쥐어지는 넉넉한 다발에 잎들이 무성히 붙어있고
개중에 봉오리 진 꽃도 붙어 있었다. 우리돈 3천원 가량을 주고 사와서 흐르는 물에 씻고
잎을 뭉쳐 단단히 잡은 뒤 칼로 얇게 저미고 다져주어 다진마늘, 다진 잣, 소금,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담가내면
 싱그러운 향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바질 페스토가 완성된다. 
바질 페스토는 스프링처럼 꼬불꼬불 꼬인 파스타인 푸실리(Fusilli)에 비벼먹으면
아주 맛있다. 
바질아, 네가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구나. 무럭무럭 자라거라. 


영 시원찮은 성장을 보이고 있는 쁘레쩨몰로(이탈리안 파슬리). 우리에게 파슬리라면 그저 요리의 조연,
그것도 먹지않는 장식용으로나 쓰인다.
생김새 탓에 컬리(Curly-오글오글, 꼬불꼬불) 파슬리라고 불리며 
좀 더 짙은 녹색에 쪼글거리는 잎이 제법 풍성해 보여서인지
요리를 맛이 아닌 눈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실 서양요리에서도 컬리 파슬리는 식용보다는 장식이나 기타 다른 가공제품의 재료로 주로 쓰인다는데
국내에 먹는 파슬리가 아닌 보는 파슬리가 대중화된 배경은 아무래도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전파된
어설픈 서양요리의 태생적 한계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볼 뿐.
아무튼 서양요리에선 파슬리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아서
해산물 요리에선 저게 없으면 요리가 안될 지경이고 후추처럼 모든 요리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과일안주에 낑겨나오는 컬리 파슬리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잎도 가지런하고 모양도 제법 봐줄만 하다.
그렇다면 맛과 향에서 각기 모양이 다른 두 종류의 파슬리는 얼마나 다를까?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 데이터는 없다 ^^. 다만 요리해보고 먹어본 경험에서 보면
 사진에서 보는 이탈리안 파슬리가 조금 더 향과 풍미가 좋다. ('~인 것 같다'가 아님!!)
파슬리를 뭉쳐 움켜쥐고 도마위에서 사각사각 잘게 썰어보면
그 차이를 대번에 느낄 수 있는데, 
줄기에 수분이 많아 썰리는 소리가 경쾌하고 시원하면서 향이 금방 올라오는 반면 
컬리 파슬리는 느낌이 둔하고 향도 떨어진다.
이탈리안 파슬리 역시 바질, 루꼴라(채소로 분류됨), 그외 여러 식용 허브와 더불어 시중에서 구하기
진짜 어려운 허브로 집에서 솜씨를 뽐내고 싶다면 직접 재배하는 수고 말고는 현재로선 없다.

3주째 생육이 멈춰있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다가 분갈이중에 실뿌리가 제법 튼실히 뻗어가는
힘있는 광경을 믿고 잎줄기를 몽땅 잘라냈다. 
힘을 키워가는 하체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거다.
튼실한 잎줄기가 쑥쑥 나올까?


모셔만 두고 있던 루꼴라를 며칠 전 파종했고 3일만에 저처럼 싹이 나왔다.
그 어느 것들 보다도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에 살짝 감동했다.

바질이나 쁘레쩨몰로가 요리에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이라면 루꼴라는 그 자체를
양과 맛으로 즐기는 채소 아니던가.
고소하다고 해야할까?
때론 매운 뒷맛을 남기지만 특유의 맛을 한 두 번 즐기다보면 어느새 중독되고 만다.
샐러드로 많이 먹고 피자나 파스타에도 듬뿍 얹어 먹는데 조화가 아주 좋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어느 식당에서 루꼴라 피자를 한 번 먹은 적 있는데
야박한 양에 아쉬웠다가 이탈리아에선 무슨 나물 먹듯이 젓가락으로 듬뿍듬뿍 집어가며 먹었었다.
저놈들 생육을 지켜본 뒤 성장에 큰 문제가 없다면 제법 큰 화단을 꾸며
상추 키우듯이 해서 그때그때 수확해 먹으려고 한다.

이상의 것들은 지금이야 재미삼아, 실험삼아, 경험삼아 키워보고 있지만
식당 오픈을 앞두게 되면 그때는 별도의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본격적인 재배에
돌입할 생각인데 마땅한 장소나 임자를 만날 수 있을런지 원.. 
 

Posted by dalgonaa

정확히 아침 8시 10분이면 발코니로 나가는 유리문을 통해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온 햇빛이 침대 머리맡 흰 벽을 붉게 물들인다. 자다가 깨서 고개만 까딱 세우면 그 햇빛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데 어제 아침엔 9시가 다 되가는데도 햇빛이 비추지 않았다. '날씨가 흐린게로군'하며 슬리퍼를 주섬주섬 신고 문쪽으로 다가가니 그제서야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현듯 든 생각이 '비는 소리가 나지만 눈은 소리가 안난다'는 것.

그리고 보니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눈이다. 함박눈 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눈이 펑펑 쏟아졌고 지붕위에도, 빨래줄 위에도 내려앉았다. 눈을 바라보는 눈이 시원해졌고 내친김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오늘은 첫눈 소식 못지않게 특별한 날이다. 베로나의 우리 짐을 싣고 엘리자베따가 뻬루자에 오는 날이기 때문. 앞서 얘기했다시피 이로써 20만원에 이르는 교통비를 아끼게 됐고 또한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편하게 앉아서 받게 됐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엘리가 오후 늦게쯤에나 도착할까 싶어 아침일찍 기차로 1시간이 채 안걸리는남쪽의 시골마을 트레비(Trevi)에서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열린다는 골동품 시장을 구경하려 했는데 12시쯤에 도착한다고 해 이 일정은 취소했다. 눈도 오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다.

맘만 먹으면 차를 집앞 골목까지 끌고들어올 수 있겠지만 들어오는 길과 달리 나가는 길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나가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우리가 종종 이용하는 광장 근처의 수퍼마켓 앞에서 보기로 했다. 뻬루자는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곳이어서 지도가 없으면 길 잃기 딱 좋고 있어도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왜냐면 골목길이 하나같이 멋지기 때문.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이곳의 골목길이다. 특히 안개라도 끼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이런.. 엘리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비상등을 켠 차에 다가가니 엘리가 그제서야 알아보고 차문을 열고 반갑게 우릴 맞는다. '차오~ 쪽쪽!' 이탈리아는 두 번에 걸쳐 양쪽에 볼키스를 하는 것이 인사법. 무거운 짐을 차에 싣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싣고 왔다. 뻬루자는 20년 만에 처음 방문이라는 엘리, 그녀는 이곳 호텔을 예약했고 크리스마스 첫 주서부터 연말 휴가중인 그녀는 뻬루자에 이틀 정도 머물 예정이다. 당연히 이날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어야 한다. 해서 김군은 이미 전날 육계장을 한 솥 끓여놨다. 고기와 무를 제외하고 주요 건더기들이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맛은 제법 난다.  


차에서 내리며 외투를 서둘러 걸치는 엘리자베따. 차문을 열어놨길래 쿵 하고 닫아줬더니 키 꽂은 채로 문을 닫아두면 얼마후 자동으로 문이 잠겨버리는 낭패가 생긴다나.. 한쪽 문은 열어뒀다.

저녁 7시에 광장에서 만나 먼저 아페리띠보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진 뒤 짐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헌데 이미 며칠 째 살고 있는 집이지만 온갖 살림을 담은 짐을 끌고 들어서니 왠지 이제서야 진짜 살 집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꽁꽁 닫아둔 짐을 풀어내니 좁은 주방겸 거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휴지도 나오고 잘 싸둔 칼도 나오고 겹겹이 포장한 간장과 식초도 나온다. 여벌의 옷들과 책, 특히 귀 후비는 면봉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샤워하고 난 뒤 물기로 간질거니는 귀를 닦고 싶어 어찌나 쩔쩔 맸는지..ㅋㅋ 텅텅 빈 집안의 수납장에 살림을 쟁여넣고 빈책장을 책으로 채웠다. 다시 걸레를 들고 미처 닦지 못한 곳을 구석구석 신나게 닦아내니 비록 당분간이지만 '이제 우리집이다'하는 실감이 든다.


보기엔 저래도 상당히 많은 짐. 무게도 꽤 나가서 짧은 거리를 지고 끌고 오는데도 땀이 다 났다.

집 구경 잠시 해볼까?

거실겸 주방. 몰타의 주방만 저거 딱 두 배였다. 그래도 전자렌지를 제외하고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으니 딱히 아쉬운건 없다. 앞집과 창문을 마주하고 있어 얇은 머플러를 응급으로 둘러쳐놨다. 가끔 대머리 총각이 창문을 열고 빨래는 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법 넓직한 화장실겸 욕실. 창문을 갖추고 있어 불쾌한 냄새나 습기를 쉽게 뺄 수 있다는 점이 장점.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제법 고풍스럽다. 달리 생각하면 저 수많은 창문에서 우리집 화장실을 훔쳐볼 수도 있다는 얘기. 허나 밤이 되서 불켜지는 창문은 고작해야 2개 정도. 많은 집들이 비어있다. 3층으로 구성되어 총 4가구가 살 수 있는 우리집 건물도 지금은 달랑 우리만 살고 있다. 뻬루자가 정상을 향해 계단식으로 지어진 도시인 탓에 우리집의 2층 높이가 저 앞집에선 1층이 된다.

김군의 '집무실'로 불리는 건넛방. 옷장, 책장, 책상을 두루 갖췄음은 물론 하얀 레이스가 달린 창문도 있는 아담한 방이다. 여기에 한국인 민박을 쳐볼까 진지하게 고민중 ㅋㅋ.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이 오면 제공할 방이기도 하다. 그럴듯해 보이는 침대지만 스프링 탄력이 고무줄 같아서 허리 안좋은 사람은 작살날 수 있는 무서운 침대. 책상 위에 뜯지않은 빠네또네가 놓여있다. 크리스마스 끝나자마자 1.5유로라는 놀라운 가격으로 대폭 떨어졌길래 냉큼 하나 사왔다. 살 빵빵 찌고있다. 


이른바 안방. 커다란 옷장도 두 개나 있고 책상과 책장도 저처럼 구성지게(?) 갖춰져 있다. 싱글침대 두 개를 붙여 쓰는데 사진에 안나온 왼쪽 구석탱이에 난방기가 있어 강양은 그쪽에 꼭 붙어 잔다. 집이 전반적으로 추운편이지만 마침 베로나에 있던 전기장판도 왔으니 이제 김군도 좀 따끈하게 잘 수 있게 됐다. 밝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발코니. 자면서 별도 볼 수 있고 저 멀리 아씨지의 아른거리는 불빛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방의 강점.

미처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엘리자베따를 위해 육계장에 더해 비빔밥을 만들었다. 시금치와 호박, 당근, 버섯을 볶고 색색의 계란지단도 부쳐냈고 무생채도 곁들였다. 색색의 그 모양이 꽤나 신기하게 보였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감탄 연발이다. 매운 맛을 두려워하는 그녀지만 참기른 살짝 둘러 비벼줬더니 맛있다며 잘 먹는다. 특히 육계장은 칼칼한 맛에도 불구하고 고기국물의 깊은 맛이 이탈리아에서 또르뗄리니를 넣고 즐기는 브로도(Brodo)와 흡사하다며 싹싹 비운다. 브로도는 이탈리아의 육수다.

중국상점에서 마침 두부를 팔길래 3모(한 모에 1,300원 정도)를 사둔게 있어 이걸 팬에 튀기고 다시 양념장을 만들어 자작하게 붓고 조렸다. 엘리는 평소 '두부는 '무미(無味)'한 맛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맛있다'며 덥썩덥썩 잘 집어먹는다. 간장양념의 맛에 엘리도 이제 조금씩 중독이 돼가고 있으리라. 팩소주가 하나 있어 이왕 벌어진 한국밥상, 팩소주를 하나 깠다. 차갑게 식혀놨더니 한 잔 맛을 본 엘리는 별로 쎄지 않단다. 차가우니 당연하지. 먼길을 마다않고 와준 엘리에게 보답한 오늘의 식탁, 사실 그간의 도움을 떠올리면 이것도 부족하지 싶다. 우래옥표 불고기를 한 번 먹여봐야 할텐데..

Posted by dalgonaa